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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월 22일 말씀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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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전주완산교회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1회   작성일Date 23-02-03 10:59

    본문

    1. 말씀 제목: “공감이 넘치는 청년 공동체”
    2. 말씀 본문: 고린도전서 12장 26-27절
    3. 말씀 요약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 속담은 보통 부모 입장에서 자녀들이 어떠하든지 모두 고루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또한 ‘각자의 모습과 기능이 다르지만, 한 몸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고통을 함께 느낀다.'란 의미입니다. '느끼는 고통의 양이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청년들과 함께 1월 한 달 동안 '공동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며 그리스도인은 왜 함께 기뻐하고 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이렇게 한 몸을 이룬 공동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할 때, 기쁨은 풍성해지며 슬픔에는 함께 견뎌냄으로 더욱 건강해지는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를 보면 사도 바울의 바램과 달리 고린도교회는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고전 11:18) 말씀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고 불리기에 너무나도 부끄러운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여줬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할 수 있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의 자리에서도 한 몸 된 공동체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체가 바르게 서있는가를 테스트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공동체라면, 서로에 대해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두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공동체로서 바르게 서지 못하게 하는, 공감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작은 교만이 있습니다. '굳이 내가 다른 공동체에 도움을 받아야 할 지체인가?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보다, 초등학생 때만 교회를 다녔던 친구들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신앙이 훨씬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의 신앙을 붙잡아주는 사람이야. 나 덕분에 청년부가 잘 운영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뿌듯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감의 모습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무시하듯이 내려다보는 시선과 행동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공동체가 보여줘야 하는 진정한 공감은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고통에 함께하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의 불완전함을 경험하시며 십자가의 고통을 친히 당하셨던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쁨도 고통도 함께 머물며 나누는 모습을 공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기대했던 공감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위대한 희생과 헌신을 당장 요청 하는 것이 아닐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공감의 시선으로 청년부를 바라본다면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지 어느덧 4년 차에 이르렀습니다. 대면 예배가 열리는 가운데 코로나 상황으로 믿음이 연약해진 지체들을 향해 "다시 나와서 보자. 함께 예배 드리자."라고 이야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을 되돌아 볼 때, 아직도 많은 지체들이 예배의 자리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더욱 두려워지는 사실은 그들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들과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정리하려 하며, 오히려 그들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반성함이 아닌 타협의 모습으로 단절을 시도하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는 오랫동안 연락을 받지 않았으니까, 다시 연락하기 부담스러우니까" 라는 핑계로 단절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다시 바로 서기 위해서는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변에 신앙이 무너진 친구들에게 정성과 사랑을 담아 예수님의 마음을 전하는 한주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