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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가 사역자가 되는 교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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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9-10] 파격적인 사랑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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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전주완산교회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75회   작성일Date 23-09-07 16:18

    본문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사랑을 또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마 5:39-41)

    1세기 무렵, 예루살렘 문화에서는 뺨 맞는 것을 최고의 모욕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중동 지방의 겉옷은 밤에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중요했기 때문에 겉옷은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계약을 어겼다고 할지라도 겉옷은 돌려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로마 군인은 낮이건 밤이건 모든 민간인을 강제 동원하여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남자에게 한 번에 오리 이상 짐을 들고 가도록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파격적이며 그들의 문화와 관례를 초월하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최고의 모욕인 뺨을 맞을 때 다른 뺨도 돌려대고, 자신의 생존인 겉옷을 달라고 할 때 속옷까지 주라고 하시고, 유대인들이 오리 이상을 가지 않는 것이 관례였지만 오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십리를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의 법의 범위를 뛰어넘는 행동을 요구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엄격하게 정의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반적인 정의를 뛰어넘어 파격적이고, 보복적이지 않은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사랑을 요구할 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친히 그 사랑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무엇을 통해서 절정을 이루었습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고난을 당할 때 뺨을 맞고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다른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이를 수용하셨습니다. 손과 발이 못이 박힐 때도 이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자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로마의 장교는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15:39) 그는 예수님의 파격적이고 비 보족적이며 십리를 가는 사랑의 힘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은 그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면, 다시 말하면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요? 요즘에 누가 물리적으로 뺨을 때리는 사람이 없지만, 말로 그와 같은 폭력을 가해 올 때 묵묵히 그것을 담당한다면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보이신 파격적인 사랑이 아닐까요?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이기신 것처럼, 주님의 파격적인 사랑은 패배처럼 보이지만 진정한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