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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가 사역자가 되는 교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교회

    목양칼럼

    평신도가 사역자가 되는 교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교회

    [23-07-23] 평등(Equality)과 공평(Equity)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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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전주완산교회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16회   작성일Date 23-07-22 09:16

    본문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은 평등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평등은 균등한 기회를 똑같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툼의 소지를 없애고, 불만을 줄이고, 평화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균등히 주었다고 하는 점에서는 불만이 없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평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차이는 그대로 남아 있고,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의 차이도 남아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평등하게 나누어준 제도가 공산주의입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 탄생한 지 100년 도 못되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평등이 아니라 공평을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공평은 한 개인의 다름과 다양성을 포용하여 그에 맞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3명의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3명의 형제가 담장 넘어 운동을 구경하고 싶은데, 각기 다 키가 다릅니다. 담장이 150센티인데, 큰형은 키가 160센티이고, 둘째 형은 135센티이고, 막내는 100센티입니다. 담장 너머 구경하기 위해서는 30센티 높이의 받침 상자를 큰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둘째 형은 하나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평입니다. 그러나 막내는 두 개의 상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평등의 개념으로 보면 3 형제 모두에게 받침 상자 하나씩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형은 받침 상자가 없어도 구경할 수 있는데, 불필요한 하나의 상자가 있게 된 것이고, 둘째 형은 필요한 하나로 담장 너머를 구경하게 되었고, 막내는 그 받침 상자 하나로는 역시 담장 너머를 구경 못합니다. 이것이 평등의 불 합리입니다.

    하나님은 평등보다는 공평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하나님은 공평하게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 받았다고 장사하지 않아서 책망을 들었습니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받은 것으로 감사하며 충성했을 때 주인이 동일하게 칭찬한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할 때, 기계적으로 어떤 헌신의 양을 정해서 하는 것은 공평의 원칙이 아니라 평등의 원칙을 따른 것입니다. 공평의 원칙을 따른 헌신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께 역량 컷 최선을 다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받으시고 그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나그네에게 냉수 한 잔 대접한 자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반면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재산의 절반을 드리고도 심판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역량 컷 최선을 다해서 헌신하는 그 헌신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카운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평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