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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신도가 사역자가 되는 교회,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교회

    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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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1-27] 감상과 자비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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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전주완산교회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49회   작성일Date 22-11-24 20:46

    본문

    저는 1991년 4월에 목사 임직을 받고 지금 섬기는 전주 완산 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31년이 지났습니다. 그 세월 동안 목회하면서 수많은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쳐왔습니다. 오직 사람을 세우는 일에 집중한다고 하면서 목양해 온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아픔과 눈물과 고독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인격의 미성숙, 지도력의 부족, 그리고 내성적이고 여린 성격도 한 요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런 아픔이 없었더라면 이만큼이라도 성숙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늘 저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지만, 그것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겸손에 대해서 설교하면 설교하는 저 자신이 겸손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섬김에 대해 설교하면 사랑과 섬김의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랑과 섬김의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설교하거나, 기도하거나, 신앙 서적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간증을 듣거나,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거나, 은혜를 받으며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제자신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이지 실제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감상이 자비를 대신하는 시대에 사는 것 같습니다. 감상은 관계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감상은 감정이고 허울뿐입니다. 감상은 남을 돌보아주는 것처럼 보이고 자비심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국기의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 애국심 같은 것이 생겨나지만 실제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것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감상입니다.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지만, 그것이 병든 친구를 찾아가 보는 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감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 신앙의 본질이 머릿속에서 지식과 교리로 머물고, 어떤 때는 그것을 토론하고 시시비비를 따지며 살아가지만, 거기까지는 자비가 아니라 감상입니다. 자비란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 신앙이 자비가 아니라 감상에 머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자비를 나 자신이 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하거나, 어렵게 느끼기 때문에 포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비는 물 한 잔, 미소 하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무엇보다 남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 그리고 지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서 자비는 시작되고, 그것이 감상에 젖는 것에서 우리를 건져 내줍니다.